평신도들에게 있어서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이 전문가들이나 가능한 공부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일단 신학서적 자체가 무겁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여러 성경의 내용 속에 신학의 본질이 있기 때문에 우리와 신학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신학의 부재는 교회의 중심을 흔들 수 있고,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려운 점들을 낳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회가 있는대로 틈틈이 신학서적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 복음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알리스터 맥그래스교수(옥스포드대학교 역사신학)의 책을 자주 읽습니다. 존스토트를 잇는 21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로 일컬어지는 그는 특이하게도 과학도였습니다. 옥스포드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22세에 받은 후 2년 후 신학박사학위까지 한 천재입니다. 그는 출신이 과학도여서 그런지 변증적인 분야에 탁월한 저술들을 많이 했습니다. [한 권으로 읽는 기독교]나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누구나 한 번쯤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대표적인 책이기도 합니다. (다만 흠이라면 책이 조금 두껍고 조금 비쌉니다^^)
물론 오늘 여러분에게 맥그래스교수를 소개할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 분의 책 가운데 가장 처음 읽은 책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 가운데 첫 번째 장을 장식하는 초대교회 교부 아나타시우스를 소개하고자 해서 입니다. 요즘 수요예배에서 연속 2주간 그분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들으신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 책에 나온 루터나, 아퀴나스, C.S.루이스 등 다른 분들에 비하면 비교적 잘 알지 못하는 분이었던 아타나시우스를 유심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는 듯이 이 책에도 그 분에 대한 것은 특별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자 또한 아타나시우스에 대한 말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고 고백할 정도니까요. 그런데도 아타나시우스는 굉장히 제 기억에 오래 남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에 대한 기록은 단순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그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 말씀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6차례에 걸쳐 20년간 도망과 추방의 세월을 보냈어야만 했습니다.
엄청난 철학적 논리와 대중적인 인기를 등에 엎었음에도 자신 안에 있는 진리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금의 타협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 앞에서는 자신 조차도 없었던 그의 삶이었기에 "과연 그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만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묶여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권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영향력있는 자리의 감독이었고,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교리 논쟁의 승리자이기도 했습니다. 복음의 핵심보다는 권력의 기반이 되는 하나의 종교를 원했던 동로마황제에게 암묵적 동의만 했어도 그는 교회 전체의 수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권력을 등에 업고 더 큰일을 계획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황금기였던 나이 40~80세까지의 기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복음에 대해 전혀 타협하지 않으므로써 대부분의 시간을 추방과 광야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승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묻혔고, 그는 괜한 고생을 하는 고집쟁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후 78년이 지나서 아타나시우스의 교리가 정식 교회의 교리로 자리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한 사람의 믿음과 신앙이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려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진리로 말미암아 그의 삶은 편안으로부터 자유, 부와 권력으로부터 자유, 세상의 인정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 진리가 그를 기뻐하게 한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압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심을 압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리스도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분이 나의 삶의 그리스도신가? 그분이 내 길의 목표인가? 그분의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조금만 고난이 와도 우리는 쉽게 합리화하여 타협하고 맙니다. 나의 인생을 버려서까지 예수의 진리를 내 진리로 간직한 사람, 그가 제 눈에 비친 아타나시우스였습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박해받고 고난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미 고난이나 박해가 사단의 전유물처럼 사용되고 이미 썩 성과있는 도구가 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미 고난을 없게 하는, 박해가 없게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시대의 아타나시우스, 바로 당신입니다. ■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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