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 2:1-11)

 

[판단하는 이들에게 임하는 심판]

1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2 "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4 더구나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사람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관용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기까지 한다니, 될 말입니까?
5 그런 사람은 완고한 마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를 터뜨려 의로운 심판을 하실 그 날을 앞에 두고,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1.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ment do the same things. 
2. Now we know that God's judgment against those who do such things is based on truth. 
3. So when you, a mere man, pass judgment on them and yet do the same things, do you think you will escape God's judgment? 
4.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tole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leads you toward repentance? 
5. But because of your stubbornness and your unrepenta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against yourself for the day of God's wrath, when his righteous judgment will be revealed.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6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7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8 이기심에 얽매여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을 내리실 것입니다.
9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요,
10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6. God "will give to each person according to what he has done." 
7. To those who by persistence in doing good seek glory, honor and immortality, he will give eternal life. 
8. But for those who are self-seeking and who reject the truth and follow evil, there will be wrath and anger. 
9. There will be trouble and distress for every human being who does evil: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0. but glory, honor and peace for everyone who does good: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1. For God does not show favori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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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 KIM 2012/05/25 10:00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롬2:1~11)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솜므전투는 세계 전쟁사에 가장 어쩌구니 없고 어리석은 전투로도 유명하다. 영국군과 프랑스군 연합군이 송므강근처에서 독일군에게 무려 150만발의 포탄을 퍼부으면서 시작된 이 전투는 결과적으로는 연합군의 참패로 끝났다. 연합군이 구사한 전략은 일명 ‘탄막포격’으로, 적의 진지를 빗자루로 쓸 듯이 포탄을 퍼부어 무력화시킨 후 지상군이 진격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포탄의 엄호를 받으며 전진하는 전술이었다. 이 전략은 정교한 관측기술과 포탄의 정확성, 그리고 서로의 교신을 위한 통신 기술이 집약된 고도의 전술전략이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참패하고 말았다. 관측기술이나 포탄의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교신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고난이도의 기술들은 제대로 발휘되었다. 문제는, 그 수많은 포탄을 맞으면 적의 진지가 괴멸할 것이라는 예측 자체가 빗나가 버린 것이다. 독일군의 진지는 멀쩡했다. 그들의 진지는 지하 20m에 위치한 지하벙커였기 때문이다. 이 전투를 많은 이들이 ‘탁상공론의 비극’이라 부른다.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다만 전투현장이 탁상의 예측과 달랐을 뿐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게으른 철학자는 세상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석만 한다.”고. 세상을 해석만 할 뿐,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철학은 이미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관념에만 머물러 삶과 맞닿지 않는다면 그 철학은 생명을 잃은 것이다. 솜므전투에서 전략가들의 탁상의 생각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들의 전투기술은 훌륭했고, 빛났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맞는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전투현장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

    우리의 판단과 비판은 늘 그렇다. 비판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판단의 늘 빗나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판단과 비판 기술은 훌륭하고 또 대부분 맞다. 판단의 명수들은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사실을 꿰뚫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우리의 비판적인 판단들은 언제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모든 상황을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그 판단들이 삶의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아무리 옳은 소리여도 판단은 판단일 뿐이고 비판은 비판일 뿐이다. 판단과 비판이 빛을 발하려면 현장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론이나 상황이 아닌 생명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절차나 전통, 권위나 마땅이 있음직한 논리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오직 생명에 관심하신다. 그래서 모든 권세 위에 일하시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십자가를 계획하신다. 하나님의 생명 사랑은 모든 이론을 파하신다. 그 생명이 하나님의 영적전투의 현장이기 때문이시다. 그 현장을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까지도 파신다. 그 현장을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도 파신다. 비판이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판단이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비판과 판단이 바로 그 현장을 떠나 탁상공론에 머무는 것이 잘못이다. 가룟유다가 주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차라리 불쌍한 이들을 도왔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한 언급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아마도 누구나도 그렇게 생각함직하고 또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판단이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시는 현장을 떠나 있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억울할지라도 말이다.

    이론을 중시할수록 우리는 외형과 형식에 빠진다. 우리의 신앙이 탁상공론에 머물수록 우리는 시험에 빠진다. 우리의 생각과 말이 현장을 벗어날수록 우리는 자신의 판단의 세계에 빠진다.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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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손성민 2012/05/25 10:04

    10절: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여기서 선이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따라 행하는 사람을 말함이라.
    나는 선을 행하는 사람일까?...
    왜 자신이 없는 걸까?
    무엇이 걸리는 걸까?
    하기야 어느 누가 자신이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겠는가!
    선하신 분은 그분 한 분 밖에 없는데,

    거꾸로 생각해보자.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는 사람은 선을 행하는 사람(?)
    마음이 빛이 나고 귀하며 평안이 있는 사람은, 선을 행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빛나고 귀하게 평안함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는데 왜 그리 가슴이 찡한 지...
    정말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로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구나!
    그 복은 아픔과 죽음...등을 뛰어넘는 것이구나!
    마음이 빛이 나고 귀하며 평안한 것처럼 완전한 복이 어디 있겠는가!

    관건은 아픔과 죽음... 등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이다
    음...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정말 뛰어넘을 수 없다.
    내 안에 그분을 모시지 않고는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을 뿐더러
    나는 결코 선을 행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실 때만,
    나는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실 때만,
    나는 빛나고 귀하며 평안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빛나고 귀하지는 않지만
    평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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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ang 2012/05/25 15:44

    사람들은 자기를 잘 포장합니다.
    못난 사람인데 잘난 사람처럼 포장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일에 익숙한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쓰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잘못이나, 못난 부분이 발각 될 까봐
    오히려 더 포장하고, 오히려 더 다른 사람을 강하게 비판하고 힐난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을 해놓고선 잘 했다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려고 늘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의 성품입니다.
    근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 눈을 감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냥 기다려 주시는 것 같아 보여서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고, 여전히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우리의 죄가 우리 스스로에게 올무가 되고,
    우리의 판단이 우리에게 족쇄가 되어서 더 이상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한다는 것을 스스로 모를 수 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된 부분을 포장하는 일을 스스로 모를 수 는 없는 법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선한 양심을 가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남을 판단하고, 남을 정죄하는 일을 계속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쌓이고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쁜 것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법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가 결정되면 좋을터인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이 결정합니다.
    근데 그 결정하심이 우리에게는 가혹한 것이 될 수 있고,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가혹해 하기 위해서 결정되어지거나,
    억압하고 고통을 주려고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칙(rule)에 의해서 결정(decision)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그 결정은 우리에게 언제나 은혜입니다.

    우리가 짦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는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그 시간이 은혜의 시간이요,
    새로운 세상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결정권을 가진 하나님은 언제나 실수가 없으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를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을 우리 중심에 두어 하나님이 우리의 법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진노를 쌓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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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가지 죄악들 (로마서 1: 28-32)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상실한 마음]

28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게,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28. Furthermore, since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he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what ought not to be done. 

 


[마음에서 나오는 21가지 죄악들]

29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30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신의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29. They have become filled with every kind of wickedness, evil, greed and depravity. They are full of envy, murder, strife, deceit and malice. They are gossips, 
30. slanderers, God-haters, insolent, arrogant and boastful; they invent ways of doing evil; they disobey their parents; 
31. they are senseless, faithless, heartless, ruthless. 

 


[죄의 결과를 알고도 부추기는 사람들]

32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공정하신 법도를 알면서도, 자기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32. Although they know God's righteous decree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deserve death, they not only continue to do these very things but also approve of those who practice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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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kang 2012/05/24 09:19


    엘리, 엘리의 아들들, 압살롬 등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는
    하나님에게 무게를 두지 않고
    자신에게 무게를 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보다는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껴 버렸습니다.
    그들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때론 하나님을 맘에 두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맘에 두고 살면 스스로 거룩하게 살 수 없는데, 거룩해져야 하니깐 힘이 들어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간섭하면 내 뜻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간섭을 귀찮아합니다.
    애써 하나님을 거부하고 애써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 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거부할 수 도 없고,
    그런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할 수도 없음을 압니다.
    왜냐하면 이 온 우주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라는 것을 적어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하면
    더 큰 혼란과 더 큰 아픔과 더 큰 상실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불의가 판을 치고,
    추악한 모습으로 세상을 등지고,
    욕망만이 들끓어
    난장판이 되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때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 거룩한 공동체 일원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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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im KIM 2012/05/24 09:28

    “'빛이 없는 상태'라는 말은 없다. 그냥 어두움일 뿐이다."(롬1:28~32)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이 있다. 오히려 나섰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그래도 어느 수준은 유지할 것이라는 의미의 말이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 기준을 ‘0’으로 삼아 더 올라가면 ‘+’의 삶으로, 내려가면 ‘-’의 삶으로 계산한다. 어떤 상태의 일이든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가급적이면 우리는 플러스의 인생을 추구하고 꿈꾼다. 그런데 우리가 기준 삼은 ‘제로’의 상태는 어떨까? 봐 줄만한 상태일까? 플러스도 아닌, 마이너스도 아닌, 진짜 기준이 되는 상태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은 백지 상태는 일반적으로 ‘문제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음을 비운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음을 비우면 마치 깨끗한 상태로 돌아가는 듯 말이다. “내려놓다”는 말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는 실제로 많은 경우, 우리가 추구하는 욕심에서 문제들이 발생한다. 우리안에 있는 탐욕은, 끊임없이 가지려 들고, 취하려 든다. 우리 마음에 탐욕은 육체의 비만처럼 영적 비만으로 작용하여 영적인 성인병을 유발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기득권과 탐욕을 내려놓는 것이 회복의 출발점임을 분명히 시인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이 어디여야 하는가이다.

    우리가 죄를 다 버린 상태가 되면 우리는 깨끗한 걸까?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의 상태를 집안의 상태로 가정하자. 집을 깨끗이 청소하면 과연 그 집은 깨끗한 걸까? 인테리어를 바꾸고, 물걸레질을 하고, 벽지와 장판을 새로 하면 과연 그 집은 안전할까? 청소한 그 집을 비우고 아무도 살게 하지 않으면 깨끗함이 유지될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마음을 비우면, 우리가 제로상태로 가면 그 상태는 깨끗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비움의 상태, 제로베이스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온전하거나 깨끗하지 못하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2장에서, 쫓겨났던 한 귀신이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어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가 그 집을 더욱 심한 형편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이 악한 세대가 이와 같다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과도하게 믿는다. 자신이 생각보다 깨끗한 줄 안다. 자신이 용가한 줄 알고, 왠만한 것은 이길 줄 안다. 죄를 버리면 자신의 힘으로도 집을 재건할 수 있을 줄 믿는다. 적어도 모든 것이 비워지면 그 자신은 선에서 출발할 줄 착각한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깨끗해도 그곳은 죄로 물든 곳일 뿐이다. 우리 마음에 다 버리면 깨끗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모든 것을 버리면, 하나님도, 죄도 몽땅 버리면 내 마음은 순수할 것이라는 믿음은 속는 것이다. 우리의 제로베이스는 불의와 추악과 탐욕, 악의로 가득하고,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교만이 가득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마음을 비운 상태의 본래 모습은 우매하고 신의가 없으며, 무정하고 무자비한 추한 모습이다.

    ‘빛이 없는 상태’라는 말은 없다. 그 상태는 그저 어두움일 뿐이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을 버리고자 하면 빛이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없이 우리의 더러움을 버릴 방법은 결코 없다. 하나님 없이 우리의 어두움을 볼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추하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럽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가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추락한다. 우리가 지금 간신히 주님을 붙들고 있기에 이쯤이라도 된 것이다. 자신을 본 모습으로 내버려주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의 본 모습은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 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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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손성민 2012/05/24 15:02

    28절: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게,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은 이제까지 어떤 묵상보다 어려웠다.
    이 말씀을 묵상하기에는...
    독서량도 부족할 뿐더러 사고력도 떨어지고 영적으로도 둔감했다.

    이 말씀에서 2가지 의문이 생겼다.
    1. 왜 사람들은, 하나님 인정하기를 싫어할까?
    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왜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실까?

    예전부터 고민하던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특별히 우리집 3남자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집 3남자를 하나님께서는 왜 돌이켜주지 않으실까...
    왜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실까?...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불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문제가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자유의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자유의지는 자기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마음 밭(?)"은 여러가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유전적, 정서적, 생활적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이지,
    자신의 뜻대로만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까?
    우리집 3남자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음은
    그 자신들보다 내 잘못이 크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잘 살지 못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해서이지
    그들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한다고 했지만
    뭔가 많이 부족한 나, 피할 수 없었던 어떤 상황들이 그들을 강퍅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을 다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실 뿐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
    하나님께서도 이 문제로 고민하실 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
    이 자유의지가 완전하신 방법이셨을 거다.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니까...

    사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3남자와 나, 가족이 하나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 3남자들을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내가 사랑해야할 의무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한결 자유스러워졌다.
    3남자들도 쬐끔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3남자들은 나보다 훨신 똑똑한 편이다.
    그래서 더 교만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가장 잘 보이는 자신을 본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내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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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로마서 1:18-27)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이 핑계치 못할 이유]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18. The wrath of God is being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the godlessness and wickedness of men who suppress the truth by their wickedness, 
19. since what may be known about God is plain to them, because God has made it plain to them.
20.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God's invisible qualities -- 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 -- 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made, so that men are without excuse. 

[우상숭배]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어서,
23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1  For although they knew God, they neither glorified him as God nor gave thanks to him, but their thinking became futile and their foolish hearts were darkened.
22  Although they claimed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23  and exchanged the glory of the immortal God for images made to look like mortal man and birds and animals and reptiles.

[성적타락]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25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26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 속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27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

24.  Therefore God gave them over in the sinful desires of their hearts to sexual impurity for the degrading of their bodies with one another. 
25  They exchanged the truth of God for a lie, and worshiped and served created things rather than the Creator -- who is forever praised. Amen. 
26  Because of this, God gave them over to shameful lusts. Even their women exchanged natural relations for unnatural ones. 
27  In the same way the men also abandoned natural relations with women and were inflamed with lust for one another. Men committed indecent acts with other men, and received in themselves the due penalty for their per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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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손성민 2012/05/23 10:29

    하나님께 감사와 영화를...
    21절 말씀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감사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감사라는 말은 잘알고
    나도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실수로 감사를 드리지 못했을지라도 돌아서서 다시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영화라는 말은 정말 잘모르겠다.
    어떤 상태가 영화로운 상태인 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영화를 기뻐하시는 지...
    사전에서는 영화를 정말 세속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영화: 권력과 부귀를 마음껏 누리는 것
    세상에서의 영화란 권력과 부귀를 누리는 것(?)
    영화란 말이 나쁜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 데...
    실망스럽다.

    성경사전을 찾아보았다.
    영광: 하나님의 임재나 긍휼, 완전성을 높이 드러내는 행위
    사전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내 맘이 시원하지 않다.
    나는 하나님께서 완전하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영화로우신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영화로우실까?
    성경에서 영광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서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라고 말한다.
    그 말씀도 인정한다.
    근데 이렇게 머리로만 가슴으로만 인정한다고 하나님께서는 영화로우실까?
    다행인것은 그나마 나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싶다는 맘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내가 어떻게, 내가 하지 않아도...
    그런데 나도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생각하는 영광은?...
    물론 내가 영광스러운 것하고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것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 자녀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그 어떤 영광을 바라지 않을 것 같다.하지만,
    사랑이 말이 쉽지, 부모래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겸손해야 하고, 순종해야 하고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다.
    나는 내 부모님께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하나님께서도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해 드리는 영광을 선택하실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우선 겸손해져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분을 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분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분을 알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그분의 완전하심을 모르고서...
    어떻게 순종할 수가 있겠는가!
    오직 겸손해야만 한다.
    그리고 순종해야만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사랑이 문제이다.
    사랑이란...
    같이 있고 싶은 것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분과 항상 같이 하고 싶은 맘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를 사랑하신다.
    이미 나와 동행하신다.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그분과 동행해야만 한다.

    그분과의 동행
    언제나 내가 그분과 동행할 수 있을 때
    언제나 내가 그분과 동행하기를 원할 때
    그 것만이 나의 유일한 기쁨이 될 때
    그분은 기쁘실 것이다.
    그 것이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그분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것이
    생각이 짧은 내가
    한 달란트를 묻어둔 악한 종, 내가
    그분께 올려드릴 수 있는
    너무나 부족하고 초라한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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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im KIM 2012/05/23 10:31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묻지마식 사랑’으로 사랑하시지 않는다.
    롬1:18~27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 단어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넓고도 깊어서 믿는 사람에서부터 믿지 않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회개한 영혼뿐만 아니라 범죄하여 낙심한 영혼에까지 미친다. 그분의 사랑은 오묘하고도 놀라와 끝없는 기다림과 반복된 용서로 우리들 가운데 드러내신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랑이 ‘받는 우리들 뜻대로 되어짐’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개념은 모든 것을 용납받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더 나가서 사랑이란 사랑받는 자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들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에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야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내 마음대로 되어야 사랑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데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사랑 또한 자기 멋대로 해석해 버린다.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더 많은 희생을 당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사랑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노는 환영받지 못하는 신학적 개념이 되었다. 가급적 사람들은 진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겁박의 도구가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버려지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의 기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구약시대에 지성소에는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하나님 앞에 불의한 자는 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에 친구를 초대하여 실컷 놀라본 경험이 있는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집안은 엉망이 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에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부모님이 오시면 그제야 집안이 엉망인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얼마나 엄청난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 그 앞에서만 나의 잘못이 보인다. 우리의 불의는 하나님 진노 앞에서만 보인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권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이 보이고, 우리의 문제가 보이며, 우리의 불경건이 보인다. 그분의 진노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내가 얼마나 불경건한지,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 진노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이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

    제자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그 스승의 진노 앞에 놓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분의 진노 앞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 앞에서 나의 불의를 고백하고, 나의 불경건을 내려놓는 사람들이다. 그 앞이 아니면 우리는 불의인지도 모른 채 불의하고, 경건한 줄 알며 불경건의 길을 걷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사랑받는 줄 알고,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용서받을 줄 알며, 불의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의 진노 앞에 놓여야 한다. 그 진노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짜 사랑이다. 오직 아버지만 나를 견책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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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cjc Ian 2012/05/23 13:12

    -오늘의 찬양, 여호와 우리 주여-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 주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 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 이관대 저를 권고 하시나이까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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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ang 2012/05/23 14:19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 때
    그들에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근데,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모든 좋은 것들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와 바꿔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에덴동산에 있던 좋은 것들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신하게 되다”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습니다.
    무엇인가가 우리를 대신하는 것에 따라서 무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무서운 결과를 경험하지 않으려면
    하나님 대신에 우리의 권리, 우리의 자존심, 우리의 권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가 걷잡을 수 없는 죄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죄는 어떻게 해서 시작됩니까?
    하나님 대신에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할 때 죄가 발생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변질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 말씀에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23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썩어 없어질 것들로 우리 안을 채워 넣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우리 안에 썩어 없어질 것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주시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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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감사와 포부 (로마서 1: 8-17)

 

[바울의 감사와 기도]

8 나는 먼저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9 내가 그 아들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를 증언하는 분이십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하며
10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으로 여러분에게로 갈 수 있는 좋은 길이 열리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8. First, I thank my God through Jesus Christ for all of you, because your faith is being reported all over the world. 
9. God, whom I serve with my whole heart in preaching the gospel of his Son, is my witness how constantly I remember you 
10. in my prayers at all times; and I pray that now at last by God's will the way may be opened for me to come to you. 

 


[로마 성도를 보기 원하는 이유]

11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2 이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가려고 여러 번 마음을 먹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혀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열매를 거둔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것을 얼마만큼 거두고자 하였습니다.
14 나는 그리스 사람에게나 미개한 사람에게나,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입니다.
15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소원은,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11.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impart 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make you strong -- 
12. that is, that you and I may be mutually encouraged by each other's faith. 
13. I do not want you to be unaware, brothers, that I planned many times to come to you (but have been prevented from doing so until now) in order that I might have a harvest among you, just as I have had among the other Gentiles. 
14. I am obligated both to Greeks and non-Greeks, both to the wise and the foolish. 
15. That is why I am so eager to preach the gospel also to you who are at Rome. 

 

 
 
[복음을 자랑하는 이유]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7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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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kang 2012/05/22 08:47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이든 종교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주먹을 믿고 살고,
    어떤 사람은 자연을 신봉하고,
    어떤 사람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믿고 살아갑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종교형태나 세계관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 때문에
    종교적인 벽이 생겨나고 문화적인 벽도 생겨납니다.
    그런 벽들이 높으면 높을수록 서로 간에 고립이 생겨나게 되고,
    사람들이 본래 창조한 목적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바울선생이 고백하기를
    “나는 그리스 사람에게나 미개한 사람에게나,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입니다.”
    (14절) 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무엇에 빚을 진 사람이 되었기에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진 사람이지만
    근본적으로 복음에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은 죄인의 모습을 벗게 하고 의롭다 칭함을 받게 합니다.
    죄인 중에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믿음으로 의롭게 살게 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가 있는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이나,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생명의 길을 알려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옛 모습이 부끄러운 모습이었으나 이 복음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났기에
    그는 복음에 빚진 사람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복음을 전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복음을 전합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로 갈 수 있는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근데, 그 길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길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긴 했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참으로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갈 때는 죄수의 모습으로 끌려갑니다.
    가는 길에 배가 파선 되어 죽을 뻔 하였습니다.
    실제 상황은 “내게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로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이든지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지 상관없이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부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미련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함으로 종교의 벽을 허물고, 계층간의 벽을 허물고,
    문화적인 벽을 허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발생된 커다란 벽, 골이 깊은 갈등, 크게 벌어진 격차를 허물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울처럼 복음에 빚진 우리가 복음이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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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im KIM 2012/05/22 10:18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기 전 이미 로마교회는 세워져 있었고, 상당한 규모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기독교 박해의 대표적인 상징인 로마황제 네로의 박해 대상자들이 바로 이 로마교인들이었습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나 제자들의 직접적인 선교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닌, 복음을 들은 이름없는 이들이 뿌린 씨앗으로 세워진 자발적인 교회였습니다. 물론 로마로 이주한 유대인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음이 틀림없지만 로마교회는 로마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였습니다.

    19세기말 중국선교사였던 존 네비우스는 중국선교정책에 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중국선교초기, 선교가 강대국의 힘의 논리와, 동양과는 다른 서양의 문화적 지배논리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국민에 의한 자국민 선교라는 기준으로 선교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즈음 한국에도 선교사들이 활동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초기선교사들 또한 서로 갈라진 교파끼리 선교적 갈등을 겪게 되어, 보다 구체적인 선교정책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은 1890년, 그들에게는 선교사 선배격인 존 네비우스의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그분을 불러 선교정책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초기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네비우스선교정책입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역사에 기념비적일만큼 훌륭한 열매였습니다. 선교지인 한국교회로 말미암아 남북으로 갈라져있던 미국의 교단 분열이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만큼 한국에 뿌려진 선교의 씨앗은 아름다웠습니다. 자국민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성경이 번역되며, 전도와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얼핏보면 한국교회는 로마교회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수많은 박해도, 초기 기독인들의 순교도, 그러면서도 계속 성장을 했다는 점에서도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로마교회에 던졌던 바울의 말씀이 한국교회에도 던지시는 도전의 말씀이 되는 것을 봅니다. 이미 교회를 이루고 있는 로마교회에 바울은 가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가장 큰 부흥을 이루고 있는 교회에 가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마음입니다만 바울은 가고 싶은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11절)

    로마교회의 부흥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로마교인들의 믿음은 이미 온 세상에 전파(8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 원했습니다. 어쩌면 바울의 눈에는 교회가 세워져 있고, 믿음이 뛰어나 순교의 사명을 다하는 로마교회이지만 여전히 연약해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세계선교의 선봉이 되었고, 가장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지만 여전히 견고치 못한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가장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고, 어딜가도 교회를 세우는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의 믿음이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견고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가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닙니다. 교회가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교회가 자랑할 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교회가 자랑할 것은 급속한 성장도, 수많은 교회와 교인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우리의 신령한 은사입니다. 내 안에 있는 복음만이 신령한 능력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우리의 믿음은 불같이 일어났다가 안개같이 사라지는 신기루 믿음일 뿐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3. 손성민 2012/05/22 10:49

    믿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17절 말씀에 믿음에 관하여 나온다.
    믿음이란...
    의심하지 않는 것.
    나는 솔직히 말해서 가끔 하나님을 의심했었다.
    정말 하나님 살아계시는 것 맞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해...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게 은혜인가보다.
    내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해 보여도, 기아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믿으니까 믿음이 더해진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 말씀이 정답이다.
    믿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은 확신이 없는 믿음이다.
    그분이 어떻든지간에, 불공평해 보이건, 우리를 아프게하건
    그분이 창조주시라는 것과 아버지시라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게 믿으니까 믿음이 더해졌다.

    그분이 불공평해 보이는 것과 우리를 아프게하는 것은
    어쩜 그분이 살아계심을 믿게하는 도구인지도 모른다.
    왜 그러실까? 생각하면서 그분을 더 생각하게 되고
    결국은 그러시는 그분에게 우리는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항복하는 순간에...
    그분께서 찾아오시고
    그분이 사랑이심을 깨닫게되며
    그분을 확신하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또 다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면서 머리를 잘라주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머리를 자르면서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 데...
    무슨 이야기 끝에, 나는 기독교임을 밝혀졌고 그분은 여러가지 질문을 나에게 했다.
    그 중 재미있었던 이야기 하나,
    그분은 나에게 천당에 갈려고 예수를 믿으시지요?라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렸다.
    대답을 잘해야 했다.
    나는 그 말에 그렇긴 하지만 단서를 달고 말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지요?
    우리 사람도 만드셨지요?
    그분은 그 말에 긍정을 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저는 그분이 아버지라서 그냥 아버지로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근데 너무나 의외로 반응을 하셨다.
    박수를 치면서 "바로 그거다" 하면서 너무 맘에 맞는 대답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그런 식의 말은 처음 들었다며 좋아했다.
    그분 앞에서 내가 확신있게 아버지를 말할 수 있었음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믿음으로 믿음을 더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믿음으로 살면 의인이 된다.
    나는 첨으로 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존감이 0%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기뻐하다가...
    넘어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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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cjc Ian 2012/05/22 15:36

    -오늘의 찬양, 내 맘에 눈을 여소서-
    내 맘에 눈을여소서
    내 맘의 눈을열어
    주보게 하소서
    주보게 하소서
    주 이름 높이들리고
    영광의 빛 비줘주시며
    권능 넘침 보기 원하네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륵 거룩
    거룩 거룩 거룩
    주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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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자 (로마서 1: 1-7)

 

[바울의 사도와 종으로서의 소명]

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 Paul, a 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to be an apostle and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 

 


[성육신과 부활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2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시켜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당신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으며,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3. regarding his Son, who as to his human nature was a descendant of David, 
4. and who through the Spirit of holiness was declared with power to be the Son of God by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Jesus Christ our Lord.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축복]

5 우리는,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이방 사람으로 하여금 믿어서 순종하게 하려고 그를 통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당신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5. Through him and for his name's sake, we received grace and apostleship to call people from among all the Gentiles to the obedience that comes from faith. 
6. And you also are among those who are 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 
7. To all in Rome who are loved by God and called to be saints: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from the Lord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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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Tim KIM 2012/05/21 09:21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묵상하게 되는군요. 주님께서 로마서를 통해 묵상케 하시고, 또 주실 말씀과 깨달음들이 많이 기대됩니다.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의 일생을 생각하면 구약의 모세가 생각납니다. 모세의 일생을 보면 파란만장의 연속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죽어야할 운명이었던 모세는 극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것도 하필 자신의 죽음을 명령한 중심인 이집트 왕궁에 의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학문과 문명을 경험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그는 세계 최고의 나라 왕자에서 광야의 거렁뱅이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40년을 살았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신분의 변화를 느끼면서 삶을 등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분의 변화와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은 그만큼 큰 고통입니다. 목숨을 버릴만큼 큰 그 고통과 절망이 모세에게도 있지 않았을까요? 모세의 광야 40년 인생은 단순한 신분변화가 아니라 자신 인생을 저주할 만큼 인간 내면의 고통을 담고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그가 잘나갈 때 부르신 것도 아니고, 그가 고통의 절정에 이르른 시기에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그의 왕궁시절, 잘나가던 시절은 고사하고 이제 인생의 절망과 고통마저도 느끼는 것이 사치일만큼 가물거려진 시기에, 이젠 아무생각없이 이렇게 살다 죽나보다하는 시기에 그 때 부르십니다.

    바울은 날 때부터 지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한 정파에 의해 특별한 교육을 받았으며.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미 그의 길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대접을 받을 것이고, 최고의 신분과 권력을 누릴 것입니다.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게 된 것도 그의 정해진 인생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그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속해있던 그룹에서는, 최고의 학자에서 사이비 학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존경받는 신분에서 이제 쫓기고 매맞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서 그에게 새롭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그룹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리스도인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공중에 붕 떠버린 신세가 되어, 하는 수 없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백수의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기쁨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슬픔에 빠져 숨을 곳을 찾기도 합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인생의 파고가 넘실거려 차가웠다 뜨거웠다,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좋을 때는 교만하고 나쁠 때는 낙심하며 살아갑니다. 기쁠 때는 모든 것이 내 것인 것 같다가 슬플 때는 모든 것을 빼앗긴듯 절망하며 삽니다. 어느 기준, 어느 장단에 나를 두어야 할지 몰라 헤매며 안정되기를 희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어떤 굴곡을 겪을지라도 그 뒤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모세에게 구원의 갈대상자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에게 왕궁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는 바로 앞에 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에게 히브리인을 위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그는 히브리인을 위한 지도자가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광야의 시절이 없었더라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어릴 적부터 학문적 바탕이 없다면 그가 복음의 비밀에 대한 로마서를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로마의 시민권이 없었다면 그는 세계선교의 첨병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광야의 시절이 없었다면 그의 불같은 성격, 쉽게 오르고 쉽게 식는 자신의 성격으론 전도자의 삶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날쭉날쭉해 보이고, 갈지자 같은 인생으로 보여도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한결같지 않은데는 그분의 섭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패에 나의 인생을 걸지말고 나의 인생 안에 숨어있는 부르심의 비밀에 우리의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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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ang 2012/05/21 12:17

    로마서는 바울이 기록한 말씀편지입니다.
    바울은 유연하고 폭넓은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논리와 논증, 시와 상상력, 성경과 기도, 창조와 역사,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한 부분들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기독교의 신학의 으뜸작”이라고 손꼽습니다.
    어떤 이는 로마서를 “기독교신학의 대성당”이라고 부릅니다.
    이 로마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로마서를 읽고 회심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어거스틴, 루터, 웨슬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1절)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성도(7절)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표현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7절을 보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들 모두가 부르심을 받았는데 부르심을 받은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일은 그들에게 부르심 받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입니다.
    한 사람이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구원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믿는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가 잘 나서, 능력이 많아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은혜를 담은 것이 복음입니다.
    2절을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속하신 것으로... 라고 기록해 놓았지 허락하신 것으로...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약속과 허락은 다른 것입니다.
    허락은 졸라서 얻어내는 것이지만
    약속은 약속하신 주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약속은 조른다고 이루어질 일이 아닙니다.
    약속은 약속한 때가 이르러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때가 이르러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베풀어진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약속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믿어야 부르심 받은 자가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였던 담을 허물게 만듭니다.
    복음은 갈라진 틈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채우게 합니다.
    복음은 죄로 생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간격을 잇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 로마교회 안에는 유대그리스도인과 이방그리스도인 사이에 분쟁이 있었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 하나로 잇고자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갈등도 많고, 분쟁도 많습니다.
    갈라진 틈도 많이 있습니다.
    계층 간에 갈라진 틈,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갈등,
    부모와 자녀의 갈등 등 이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갈라진 틈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채우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음을 믿어야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있어야
    갈등은 해소되고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하심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는 하루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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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손성민 2012/05/21 16: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것...
    6절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씀이 나오고
    7절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이었다는 말입니다.
    음...
    저는 예수 그리스도 것, 맞을까요? 부터 생각했습니다.
    정말 저는 예수 그리스도 것, 맞나요?...
    옛날 같았으면 저는 어쩜 '잘 몰라요'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네, 저는 예수 그리스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는 요즈음 그분이 주시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분이 그 어.떤. 것.을 주셔서 저는 정말 그분이 살아계시는구나라는
    확신을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 성경을 통독하면서...
    삶에서...
    하나님께서 정말 많이 죽이시고 아프시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을까?...
    우울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셔도, 그렇게 아프시게 하셔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정말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고백하지 않고는 어떤 해답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그 어떤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정말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조마조마합니다.
    그 귀한 것이 다시 사라질까봐요...

    오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 것은 그분이 사.랑.하.셔.서.라고 나와있습니다.
    갑자기 '사랑'이 무얼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일까?
    또...
    다시 아파야하고 죽어야하고 고통해야 하고...
    그런게 사랑일까?...
    주권은 인정하지만...
    정말 사랑하신다면...
    사랑이란 아끼고 위하여 한없이 베푸는 것이라는 데,
    왜 그렇게 하실까...
    생각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귀한 것을 주신 걸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것 맞은 데...
    하나님께서 그러실 때는 그러실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분이 만드셨으니, 그 만드신 분이 제일 잘 아시니까,
    그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이시겠지...

    아마 그분은 우리하고 같이 있고 싶으신 거 아닐까?...
    우리하고 너무나 같이 하고 싶으신 거야...
    근데 사람인 우리하고, 신이신 그분하고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 방법 밖에는 없으신 거야...
    그러실 수밖에는 없으신 거야...

    그래...
    사랑이란 같이 있고 싶으신 거야...
    너무 위하고 아끼셔서...
    같이 있고 싶으신 거야...
    정말 그래
    우리도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쟎아...
    하나님도 그래...
    아니지?
    하나님이 그러시니까
    우리도 그러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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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cjc Ian 2012/05/22 15:31

    -오늘의 찬양, 나의 부르심-
    나의 부르심 나의 영원한 소망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것
    나의 목적 나의 높은 부르심
    세상을 뒤로 하고 주 위해 사는 것

    덮으소서 주님 거룩한 품에 품으소서
    이곳이 나 속한곳 오 예수 이끄소서
    주 얼굴 보기 위해 은밀한 곳으로
    내가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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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9[GT묵상] 여호사밧의 행적 (열왕기상 22:41-53)

[산당을 폐하지 않은 개혁의 한계]
41    이스라엘아합 왕 제 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유다의 왕이 되었다.
42    여호사밧은 왕이 될 때에 서른다섯 살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스물다섯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아수바실히의 딸이다.
43    여호사밧은 자기의 아버지 아사가 걸어간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그 길을 그대로 걸어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그가 산당만은 헐어 버리지 않아서,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44    여호사밧이스라엘 왕과 평화롭게 지냈다.
45    여호사밧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보여 준 권세와, 그가 치른 전쟁에 관한 것들이, 모두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46    그는 그의 아버지 아사 시대까지 남아 있던 성전 남창들을 그 땅에서 내쫓았다.
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었고, 유다의 왕이 임명한 대리자가 다스리고 있었다.

 

41    Jehoshaphat son of Asa became king of Judah in Ahab's fourth year as king of Israel.
42    Jehoshaphat was thirty-fi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uled from Jerusalem for twenty-five years. His mother was Azubah daughter of Shilhi.
43-46    Jehoshaphat obeyed the LORD, just as his father Asa had done, and during his rule he was at peace with the king of Israel.
He got rid of the rest of the prostitutes from the local shrines, but he did not destroy the shrines, and they were still used as places for offering sacrifices.
Everything else Jehoshaphat did while he was king, including his brave deeds and military victories, is written in The History of the Kings of Judah.
47    The country of Edom had no king at the time, so a lower official ruled the land.



[배의 파선을 통해 돌이키는 여호사밧]
48    여호사밧오빌에서 금을 가져오려고 다시스 선단을 만들었으나, 그 배들이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였다.
49    그러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여호사밧에게 "나의 신하들이 임금님의 신하들과 같은 배를 타고 가게 하겠습니다" 하고 제의하였으나, 여호사밧은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50    여호사밧이 숨을 거두니, '다윗 성'에다가 조상들과 함께 그를 장사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48    Jehoshaphat had seagoing ships built to sail to Ophir for gold. But they were wrecked at Ezion-Geber and never sailed.
49    Ahaziah son of Ahab offered to let his sailors go with Jehoshaphat's sailors, but Jehoshaphat refused.
50    Jehoshaphat died and was buried beside his ancestors in Jerusalem, i) and his son Jehoram became king.

Jerusalem: Hebrew "the city of his ancestor David."


[악한 왕 아하시야]
51    유다여호사밧 왕 제 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52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리게 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걸은 길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은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53    그는 바알을 섬기고, 그것에 절을 하여서, 그의 아버지가 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51    Ahaziah son of Ahab became king of Israel in the seventeenth year of Jehoshaphat's rule in Judah, and he ruled two years from Samaria.
52    Ahaziah disobeyed the LORD, just as his father, his mother, and Jeroboam had done. They all led Israel to sin.
53    Ahaziah worshiped Baal and made the LORD God of Israel very angry, just as his father had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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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 KIM 2012/05/19 09:56

    선생님은 말로 가르치지만 부모는 삶으로 가르칩니다.

    우리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희망교육센터 다림교육에서는 매달 부모교육을 합니다. 벌써 12회를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녀들 교육기관에서 왜 부모교육을 하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게다가 부모교육을 성실히 나오시지 않으면 자녀가 다림교육에서 더이상 교육받을 수 없는 규율이 있는터라 더더욱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무료교육기관인 다림에서는 부모님들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녀들이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부모교육 때문에 다림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부모교육을 통해서 가정의 변화를 느끼신 분들이 추천을 하셨기 때문이죠.

    선생님은 말로 밖에는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 미래에 대한 꿈을 말에 담아 가르칩니다. 선생님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가르쳐도 그 능력은 말에 국한됩니다. 그러나 부모는 다릅니다. 부모는 아무리 말을 잘해도 그의 삶으로 자녀를 가르칩니다. 아무리 좋은 제시, 좋은 꿈을 말해도 자녀들은 그 말이 아닌 그의 삶으로부터 배웁니다. 부모이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부모님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 가운데는 "나는 자녀에게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왜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부터 말이 아니라 삶으로 배우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림에서는 부모님들 교육만 했을 뿐인데 자녀들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 경우를 보고 있습니다. 부모의 가르침, 부모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외부에서 받아도 부모로 인해 받는 영향력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밤 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들을 보면 가슴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진정 교육은 학원이 아니라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족입니다. 더욱이 왕의 자녀라 하면 그를 가르치는 석학들만도 즐비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과목마다 선생이 붙어 가르쳤을지도 모르죠. 세계 정세와 경제에 대한 가정교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덕목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고, 왕의 품위와 자세에 대해서도 배웠겠지요. 오늘 본문은 그렇게 자란 두 명의 왕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아사의 아들 유다왕 [여호사밧]과 아합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입니다. 아마도 이 둘은 교육에 관한한, 선생에 관한한 좌웅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많은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왕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을 가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생이 적어서도, 교육이 나빠서도가 아닙니다. 단 한 가지, "그의 아버지의 모든 길을 따랐다." 때문입니다.

    자녀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삶으로 낳는 것입니다. 제자 또한 말이 아닌 삶으로 만듭니다. 다시말하면 겉 모양이 아닌 중심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중심을 다른 것으로 대처하지 마십시오. 나의 중심을 교회생활로 바꾸지 마십시오. 나의 중심을 십일조나 행위로 대신하지 마십시오. 나의 중심을 겉모양으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오직 나의 열매는 나의 중심에서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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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cjc Ian 2012/05/22 15:30

    -오늘의 찬양,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내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때 나의 영혼 기쁘다

    내영혼에 노래 있으니 주 찬양합니다
    주 귀를 기울이시사 다 듣고 계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때 나의 영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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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의 죽음 (열왕기상 22:24-40)

 

[참 선지자 미가야의 수난]

24 그러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다가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말하였다. "주의 영이 어떻게 나를 떠나 네게로 건너가서 말씀하시더냐?"
25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네가 골방으로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너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6 이스라엘 왕은 명령하였다. "미가야를 잡아다가, 아몬 성주와 요아스 왕자에게로 끌고 가거라.
27 그리고 내가 명하는 것이니, 이 자를 감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빵과 물을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라고 하여라."
28 미가야가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정말로 평안히 돌아오실 수 있으면, 주께서 나를 시켜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미가야는 한 마디 더 붙였다. "여기에 있는 모든 백성은 나의 말을 잘 기억하여 두시오!"

24. Then Zedekiah son of Kenaanah went up and slapped Micaiah in the face. "Which way did the spirit from the LORD go when he went from me to speak to you?" he asked. 


25. Micaiah replied, "You will find out on the day you go to hide in an inner room." 


26. The king of Israel then ordered, "Take Micaiah and send him back to Amon the ruler of the city and to Joash the king's son 


27. and say, `This is what the king says: Put this fellow in prison and give him nothing but bread and water until I return safely.'" 


28. Micaiah declared, "If you ever return safely, the LORD has not spoken through me." Then he added, "Mark my words, all you people!" 
 

 

[변장한 아합 왕의 죽음]

29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시리아와 싸우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올라갔다.
30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여호사밧에게 말하였다. "나는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들어갈 터이니, 임금께서는 왕복을 그대로 입고 나가십시오." 이스라엘 왕은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들어갔다.
31 시리아 왕은 그와 함께 있는 서른 두 사람의 병거대 지휘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를 상대하여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만 공격하여라."
32 병거대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더니, "저 자가 이스라엘의 왕이다." 하며 그와 싸우려고 달려들었다. 여호사밧이 기겁을 하여서 소리치니,
33 병거대 지휘관들은,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알고서, 그를 추적하기를 그만두고 돌아섰다.
34 그런데 군인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긴 것이 이스라엘 왕에게 명중하였다. 화살이 갑옷 가슴막이 이음새 사이를 뚫고 들어간 것이다. 왕은 자기의 병거를 모는 부하에게 말하였다. "병거를 돌려서, 이 싸움터에서 빠져 나가자. 내가 부상을 입었다."
35 그러나 특히 그 날은 싸움이 격렬하였으므로, 왕은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시리아 군대를 막다가 저녁 때가 되어 죽었는데, 그의 병거 안에는 왕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36 해가 질 즈음에 "각각 자기의 성읍으로, 각각 자기의 고향으로!" 하고 외치는 명령이 진영에 전달되었다.

29. So the king of Israel and Jehoshaphat king of Judah went up to Ramoth Gilead. 


30. The king of Israel said to Jehoshaphat, "I will enter the battle in disguise, but you wear your royal robes." So the king of Israel disguised himself and went into battle. 


31. Now the king of Aram had ordered his thirty-two chariot commanders, "Do not fight with anyone, small or great, except the king of Israel." 


32. When the chariot commanders saw Jehoshaphat, they thought, "Surely this is the king of Israel." So they turned to attack him, but when Jehoshaphat cried out, 


33. the chariot commanders saw that he was not the king of Israel and stopped pursuing him. 


34. But someone drew his bow at random and hit the king of Israel between the sections of his armor. The king told his chariot driver, "Wheel around and get me out of the fighting. I've been wounded." 


35. All day long the battle raged, and the king was propped up in his chariot facing the Arameans. The blood from his wound ran onto the floor of the chariot, and that evening he died. 


36. As the sun was setting, a cry spread through the army: "Every man to his town; everyone to his land!" 
 

 

[말씀대로 심판이 이루어짐]

37 왕은 죽고 사람들은 그 주검을 사마리아로 가지고 가서, 그 곳에 묻었다.
38 그리고 사마리아의 연못에서 왕의 병거와 갑옷을 씻을 때에, 개들이 그 피를 핥았고, 창녀들이 그 곳에서 목욕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
39 아합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 궁과 그가 세운 성읍들에 관한 모든 사실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40 아합이 조상들과 함께 묻히니, 그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37. So the king died and was brought to Samaria, and they buried him there. 


38. They washed the chariot at a pool in Samaria (where the prostitutes bathed), and the dogs licked up his blood, as the word of the LORD had declared. 


39. As for the other events of Ahab's reign, including all he did, the palace he built and inlaid with ivory, and the cities he fortifie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annals of the kings of Israel? 


40. Ahab rested with his fathers. And Ahaziah his son succeeded him as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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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손성민 2012/05/18 16:44

    복이란...
    무엇일까?...
    오늘 말씀에 미가야의 수난과 아합의 죽음이 있다.
    아합은 엘리야의 예언대로 죽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되어 있다.
    그럼 생전에 호위호식하고 죽는 것과
    생전에 고생고생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
    어떤 것이 더 복된 삶일까?...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전자가 복된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기쁨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다.
    한동안 우울에 빠지게 했던 주님을 생각하면서,
    왜 우울속에 빠지게 하셨는 지 알 것 같았다.
    우울속에 빠져보니,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 깨닫게 되었다.
    기쁨이 없는 삶은 죽음이거나, 지옥이었다.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이유를 새삼 알게되었다.
    어찌되었건 기쁨만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한없이 기쁜데,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로 그 기쁨이 복인 것이다.
    호위호식하는 것이 기쁜 것일까?
    순간적인 감각의 만족을 느낄 수는 있을 지 몰라도
    그 만족은 금새 사라지며 또 다시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음, 내 생각엔 깊은 시원함을 깊은 기쁨을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쁨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
    그 기쁨은 참 깊은 맛이라고나 할까?
    부족함이 없는 깊은 맛...
    그 맛을 본 사람만 알것 같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 깊은 맛을 알지 못한다.

    성경을 보면
    고생을 안한 선지자가 아무도 없다.
    고통이 없었던 선지자, 죽음이 없었던 선지자도 없다.
    근데 왜 그들이 복된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그럴까?

    내가 아는 복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들이 복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온갖 수난을 겪어도, 그들과 주님이 함께한 것이다.
    주님이 함께하시니,
    기쁨의 근원이신 주님과 동행하니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슴 깊숙히 기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쩜 그 기쁨은 직접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쁨 없이는 주님의 일을 그렇게 당당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깊은 곳에 기쁨이 살고 있는 것이다.

    기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하는 근본이기도 하며
    기쁨은 삶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복된 것이다.
    기쁨이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래서 기쁨이 전혀 없는 사람은 자살하거나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만 참된 기쁨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더 알아서 그 기쁨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의 미가야선지자는 복된 사람이었고
    아합왕은 복된 사람이 아니었다.
    아합은 깊은 기쁨과 깊은 시원함을 맛보지 못하고
    심한 갈증속에서 죽어간
    불쌍한 사람이었다.


    요즘

    기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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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cjc Ian 2012/05/22 15:26

    -오늘의 찬양, 내 영혼의 그윽히-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흘러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힌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아무도 없으리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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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김진형 2012/05/24 03:19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감히 어떻게 자신의 의를 위하여 거짓을 일삼고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진정으로 그 진노를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습관으로 쌓여 온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듯 하나님께서는 말씀, 곧 약속을 이루신다.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을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다면, 심판의 때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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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 (열왕기상 22;10 -23)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

10 그 때에 이스라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타작 마당에 마련된 보좌에 앉아 있고, 예언자들은 모두 그 두 왕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었다.
11 그 예언자들 가운데서,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가 만든 철뿔들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철로 만든 이 뿔을 가지고, 너 아합은 사람들을 찌르되, 그들이 모두 파멸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십니다."
12 다른 예언자들도 모두 그와 같은 예언을 하면서 말하였다. "길르앗의 라못으로 진군하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이미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10. Dressed in their royal robes, the king of Israel and Jehoshaphat king of Judah were sitting on their thrones at the threshing floor by the entrance of the gate of Samaria, with all the prophets prophesying before them. 
11. Now Zedekiah son of Kenaanah had made iron horns and he declared, "This is what the LORD says: `With these you will gore the Arameans until they are destroyed.'" 
12. All the other prophets were prophesying the same thing. "Attack Ramoth Gilead and be victorious," they said, "for the LORD will give it into the king's hand." 

 


[재차 묻는 아합에게 그의 죽음을 예언하는 미가야]

13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말하였다. "이것 보시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14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15 그가 왕 앞에 나아가니, 왕이 그에게 물었다. "미가야는 대답하시오. 우리가 길르앗의 라못으로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올라가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그 곳을 왕의 손에 넘겨 주실 것입니다."
16 그러자 왕은 그에게 다시 말하였다. "그대가 주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을 할 때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누차 일렀거늘, 내가 얼마나 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겠소?"
17 미가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이산 저 산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 떼와 같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이들에게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여라 하십니다."

13. The messenger who had gone to summon Micaiah said to him, "Look, as one man the other prophets are predicting success for the king. Let your word agree with theirs, and speak favorably." 
14. But Micaiah said, "As surely as the LORD lives, I can tell him only what the LORD tells me." 
15. When he arrived, the king asked him, "Micaiah, shall we go to war against Ramoth Gilead, or shall I refrain?" "Attack and be victorious," he answered, "for the LORD will give it into the king's hand." 
16. The king said to him, "How many times must I make you swear to tell me nothing but the truth in the name of the LORD?" 
17. Then Micaiah answered, "I saw all Israel scattered on the hill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the LORD said, `These people have no master. Let each one go home in peace.'" 

 


[불평하는 아합에게 천상 회의 비유로 심판을 예언하는 미가야]

18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그는 나에게 길한 것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것만을 예언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19 미가야가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가 보니 주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그 좌우 옆에는, 하늘의 모든 군대가 들러 서 있는데,
20 주께서 물으십니다. 누가 아합을 꾀어 내어서, 그로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죽게 하겠느냐?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하자 또는 저렇게 하자 하며, 저마다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데,
21 한 영이 주 앞에 나서서, 말합니다. 제가 가서 그를 꾀어 내겠습니다. 그러자 주께서는 그에게 물으십니다. 그를 어떻게 꾀어 내겠느냐?
22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서, 그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겠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를 꾀어라.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가서, 곧 그렇게 하여라.
23 그러므로 이제 보십시오. 주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여기에 있는 임금님의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주께서는 임금님께 이미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18. The king of Israel said to Jehoshaphat, "Didn't I tell you that he never prophesies anything good about me, but only bad?" 
19. Micaiah continued, "Therefore hear the word of the LORD: I saw the LORD sitting on his throne with all the host of heaven standing around him on his right and on his left. 
20. And the LORD said, `Who will entice Ahab into attacking Ramoth Gilead and going to his death there?' "One suggested this, and another that. 
21. Finally, a spirit came forward, stood before the LORD and said, `I will entice him.' 
22. " `By what means?' the LORD asked. " `I will go out and be a lying spirit in the mouths of all his prophets,' he said. " `You will succeed in enticing him,' said the LORD. `Go and do it.' 
23. "So now the LORD has put a lying spirit in the mouths of all these prophets of yours. The LORD has decreed disaster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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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 KIM 2012/05/17 09:50

    진리는 다수결이 아닙니다.


    다수결의 힘을 아십니까?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사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원칙은 다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조금 양보하여 다수의 의견이 합리적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화와 타협의 정신에 근거한 다수결 원칙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원칙에 입각하여 선거도 합니다. 단 한표라도 더 나온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 다수결 원칙입니다.

    다수결의 힘은 비단 사회 제도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에도 다수결의 힘이 작용을 합니다. 마치 더 많은 사람들이 먹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쓰는 것이, 더 옳고, 더 나은 것 같이 느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이, 더 바르고, 더 맞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나도 걸어야 하고, 나도 따라야 할 것만 같게 느낍니다. 이것이 다수결의 힘입니다.

    유행이라는 것의 흐름도 이 다수결의 힘에 근거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해야할 것 같고, 안 하면 시대흐름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세련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유행뿐이겠습니까? 가장 심각한 것은 영적인 가치를 다루는 흐름에도 이 다수결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문화에도 유행을 탑니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복음이 각색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아는 한 교회는 개척을 하면서 그 지역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지역을 알고, 지역의 성향을 아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그 지역과 지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말씀을 원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선호하는지를 조사하여 철저히 그 틀에 맞춰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 교회는 지금 뒤늦은 개척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최대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 더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이 진리처럼 여겨집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7:13,14)

    아합의 주위에는 400여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합의 결정을 찬양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다른 말을 하는 선지자는 미가야 단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아합의 신하는 미가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당신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13절)" 그러나 미가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14절)"

    진리는 다수결이 아닙니다. 진리는 다수가 따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이 가기 때문에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이시기에 진리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가건, 적은 사람이 가건, 많은 이가 따르건, 적은 이가 따른 건, 진리는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진리이지 우리의 선택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 천 명이 모인다고 그곳이 반듯이 진리가 선포되는 것도 아니며, 작은 교회라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분량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 임재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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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손성민 2012/05/17 14:48

    미가야의 대답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겠습니다"(14절)

    이 말씀을 대하면서 가슴이 '쿵'했다.
    왜냐하면 갑자기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될 수 있으면 남이 힘드는 말은 피하는 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그런 자리에서만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자리는 왕, 말이 왕이지 왕 앞에서 왕이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
    죽음의 자리가 될 지도 모르면서 옳은 말을 해야하는 자리다.
    '덜덜' 떠느라고 아무 말 하지 못할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근데 이 문제는 의외로 심각했다.
    물론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했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서라도 진리를 말해야만 한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나를 살펴 보아야 한다.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
    계시는 것 맞는가?...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엘리야를 읽을 때는 그냥 선지자니까...하고 넘어 갔었다.
    이번에 미가야를 만나서...
    정말 왕께 나아가는 일이 죽음을 각오하는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는,
    선지자라면 어떤 자리에서건 어느 곳에서건
    진리를 말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목사님 생각이 계속 났다.
    아,
    우리 목사님이 미가야선지자이고 엘리야선지자이구나...
    얼마나 외롭고 힘드실까......

    그러면서 웃었다.
    우리 목사님은
    우리 목사님도
    왕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실 분이지... ㅎㅎ

    어제 수요설교에서 말씀하신
    롯의 선지자가 아브람이듯이...
    우리의 선지자가
    나의 선지자가
    우리 목사님이시구나!
    ㅎㅎ

    perm. |  mod/del. |  reply.
  3. kang 2012/05/17 17:58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힘이 있는 이유는 내 생각을 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의 말의 힘은 말씀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권세가 주어질 것입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
    미가야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부끄러운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제게 맡겨두신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워서 말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말씀대로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말씀을 선포한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성격이 원래 그래..."하면서 전할 말씀을 못 전하고 훌쩍 넘긴 적도 많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받은 말씀이 있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설령 제가 전한 말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다고 하여도, 찔림을 받는다고 하여도,온전히 전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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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cjc Ian 2012/05/22 15:23

    -오늘의 찬양, 주 하나님 지으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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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진형 2012/05/24 03:07

    거짓을 고하는 `시드기야` 같은 예언자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만연하고 있다.
    권력에 붙어 지도자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거짓을 고하는 그런 자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판을 치고 있다.

    `미가야`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자들이 생명을 걸고 나서야 한다!
    그게 바로 나이고 우리여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도 자기 의를 던져버리고,
    오직 주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는 자가 바로 나, 그리고 우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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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야의 경고 (열왕기상 22:1-9)

 

[아합의 협력 요청에 흔쾌히 응하는 여호사밧]

1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세 해 동안이나 전쟁이 없었다.
2 그런데 삼 년째 되는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을 찾아갔다.
3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길르앗에 있는 라못은 우리 땅인데도, 우리가 그 땅을 시리아 왕의 손에서 다시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너희는 이것을 알고 있었느냐?"
4 그리고 그는 또 여호사밧에게도 말하였다.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나와 함께 올라가시겠습니까?" 그러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생각이 바로 임금님의 생각이며, 내가 통솔하는 군대는 곧 임금님의 군대이고, 내가 부리는 말이 곧 임금님의 말입니다."

1. For three years there was no war between Aram and Israel. 
2. But in the third year Jehoshaphat king of Judah went down to see the king of Israel. 
3. The king of Israel had said to his officials, "Don't you know that Ramoth Gilead belongs to us and yet we are doing nothing to retake it from the king of Aram?" 
4. So he asked Jehoshaphat, "Will you go with me to fight against Ramoth Gilead?" Jehoshaphat replied to the king of Israel, "I am as you are, my people as your people, my horses as your horses." 

 


[거짓 승리를 예언하는 선지자들]

5 그러면서도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먼저 주의 뜻을 알아 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6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 사백 명 가량을 모아 놓고서,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예언자들은 대답하였다. "올라가십시오. 주께서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겨 주실 것입니다."

5. But Jehoshaphat also said to the king of Israel, "First seek the counsel of the LORD." 
6. So the king of Israel brought together the prophets -- about four hundred men -- and asked them, "Shall I go to war against Ramoth Gilead, or shall I refrain?" "Go," they answered, "for the Lord will give it into the king's hand." 

 


[아합의 만류에도 미가야를 불러오는 여호사밧]

7 여호사밧이 물었다. "이 밖에 우리가 물어 볼만한 주의 예언자가 또 없습니까?"
8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에게 대답하였다. "주의 뜻을 물어 볼 사람으로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 여호사밧이 다시 제안하였다. "임금님께서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9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신하를 불러서 명령하였다. "이믈라의 미가야를 빨리 데려 오너라."

7. But Jehoshaphat asked, "Is there not a prophet of the LORD here whom we can inquire of?" 
8. The king of Israel answered Jehoshaphat, "There is still one man through whom we can inquire of the LORD, but I hate him because he never prophesies anything good about me, but always bad. He is Micaiah son of Imlah." "The king should not say that," Jehoshaphat replied. 
9. So the king of Israel called one of his officials and said, "Bring Micaiah son of Imlah at 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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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손성민 2012/05/16 08:26

    길과 흉...
    좋은 것과 나쁜 것
    아합왕은
    미가야선지자가 자신에게 길한 것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만 예언한다고 그를 미워했다.

    나는 아합왕이 삶에 관하여 깨달음이 참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2번이나 전쟁을 이기게해 주셨는데도 결국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다.

    삶은 죽을 때까지 깨닫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알아도 알아도 더 알아야 되는 하나님...

    삶은 길과 흉이 공존한다.
    어떤 사람도 좋은 일만 있다거나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하나님안에서는 나쁜 일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때늦은 깨달음이지만 말이다.
    나쁜 일 안에 숨겨진 비밀스런 그분의 뜻을 깨닫게 되면 세상의 나쁜 일은 없다.
    죽음이나 고통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무슨 나쁜 일이 있겠는가!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지나갔다.
    그 시간과 고통이 없이는 그 깨달음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고통이, 아합이 싫어했던 흉한 일이 있는 것이다.
    아합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왕이었다.

    나에게 지금 나쁜 일이 있는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일은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데,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내가 무슨 왈가왈부를 할 수 있겠는가!
    그 안에 그분이 숨겨놓으신 좋은 것을 보라...

    언제나
    어떤 곳에서나
    어느것에서나
    그분이 숨겨놓으신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귀한 눈이
    귀한 내 눈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이 귀한 눈으로 하루를 살고 싶다.
    오늘도 이 귀한 눈으로 남을 바라보고 싶다.
    특별히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는 일에서 까먹지말고
    그 누구를...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귀한 눈으로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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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점이 2012/05/16 09:43

    예언자_주님의예언자,성도_주님의성도,제자_주님의제자,자녀_주님의자녀,사람_주님의사람,친구_주님의친구,동역자_주님의동역자 ,정희_주님의정희..나는 정희가 아니라 주님의정희로 살아가고있나..참 막 정신없이살다보니 더 절실히 다가온다 하나님으로내영이채워지지않으면 그냥 막 살게된다는거 아무것도없이 그냥 숨만 쉬며 살아가게된다는것.. 윽 고백만하고 안하면 안되! 주님의정희가되자 더이상은 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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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im KIM 2012/05/16 10:38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위로받을 존재가 아니라 징계받을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용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용서를 구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용서를 해야할 대상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용서를 구하는 대상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 앞에서 늘 죄인입니다. 도무지 선한 일을 한 적이 없고, 늘 죄 짓는데는 빨랐으며 내 자신을 교정하는데는 늘 느렸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신들 나는 할말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내 안엔 그분의 위안이나 어떤 영적인 은총도 받을 만한 자격이 조그만치도 없습니다. 나의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고 할찌라도 그분의 위로를 얻을 만한 자격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나에게 자격이 있어서 용서함 받은 것이 아니요, 나에게 의로움이 있어서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주님의 자비로우심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분 앞에 나아갈 길은 오직 겸손함 밖에 없습니다.

    아합왕 시절에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를 아합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8절) 그래서 아합은 그를 싫어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쓴말들을 싫어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교회에서는 강한 메시지, 강력한 도전의 가르침을 싫어합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와 같은 경고들을 싫어합니다. 대놓고 위로의 말씀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좋은 말씀을 달라고, 축복의 말씀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자신을 깨뜨리는 복음의 강력한 메시지는 점점 사라지고 그런 교회와 목회자는 점점 터부시 됩니다. 반면에 번역의 신학, 번영의 메시지만이 교회에 판을 칩니다. 그런 교회들이 부흥하고 그런 메시지에 심취한 사람들이 취미삼아 봉사하며, 헌신하며 자신의 것, 자신의 울타리는 강력하게 지킨 채 그리스도인 행세를 합니다.

    아합에게는 달콤한 메시지를 전하는 400명의 선지자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왕의 마음을 알아 그 마음에 달콤한 이야기만 하는 이들이 주위에 많았습니다. 우리는 유유상종으로 끼리끼리 만납니다. 그리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좋은 말들을 나누며 삽니다. 그런데 교회에서까지 그런 말들을 요구합니다. 선지자가 있어야할 이유를 망각한 채 말입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진정한 삶의 선지자들이 있습니까? 미가야의 독설은 아직 남아있는 하나님의 애정의 증표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 놓인 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입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자신을 위로보다 징계받을 자로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위로와 은혜와 강복은 그분에 의에서 허락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거론할 것이 못됩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임을, 위로를 요구하기는 커녕 주신 위로를 냉큼 받기도 민망하고 받을 자격조차도 없는 죄인임을, 언제나 나는 당신의 경고와 가르침으로 내 영을 깨워야 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겸손입니다.

    갈1: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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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cjc Ian 2012/05/16 11:55

    -오늘의 찬양, 경배하리-
    경배하리 내 온 맘 다해
    찬양하리 내 온 힘 다해
    주 찾으리 나 사는 동안
    주님의 길을 나 따라가리

    주님만을 경배하리
    주님만을 찬양하리
    찬양받기 합당하신
    존귀하신 주만 높이리

    무릎꿇고 주 맞이하리
    내 모든 것 다 드리리
    주를 향해 내 눈을 들고
    주 의지하리 주만 의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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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kang 2012/05/16 12:33

    오늘 본문에는 아합이 불러 모아온 선지자 400명이 있습니다.
    그 선지자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 선지자들에게 아합이 묻습니다.
    “내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게소,
    아니면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6절)
    그러자 400명의 선지자들은 동일하게 대답을 합니다.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이 400명의 선지자들은 아마도 왕이 어떤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자문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400명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예언을 하고 답변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이들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왕에게 아부하면서 왕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았던 인물들처럼 보입니다.
    400명의 선지자는 예언의 진실성에는 관심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왕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려고 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미가야는 아합이 듣기에 좋은 말만 골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미가야를 싫어한다고 대놓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미가야는 한 번도 자신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였다는 것입니다.(8절)

    이것으로 보아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했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이 왕이든, 왕이 아니든
    듣기 좋은 말이든, 듣기 싫은 말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상대에게 듣기 좋든 싫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듣는 상대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뉘우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구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한다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듣기 싫은 말만 한다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게 길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내게 흉하고 듣기 싫은 말을 한다고 거부하고 터부시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버릇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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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진형 2012/05/19 12:37

    사람의 약속은 영원할 수 없고 영원한 것을 기대해서도 안되다.
    우리는 사람일 뿐이고, 한계안에 살아간다.
    단지 눈앞에 것을 보고 멀러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에겐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다,
    그분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고
    한계가 없으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우린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다. 주님 한분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주님 한분만이 나의 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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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는 아합 (열왕기상 21;17-29)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저주의 예언]

17 주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 곳으로 내려갔다.
19 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 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21 내가 너에게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너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씨도 남기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애 버리겠다.
22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내가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되게 하겠다.
23 주께서는 또 이세벨을 놓고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5 (자기 아내 이세벨의 충동에 말려든 아합처럼, 주께서 보시기에 이렇게 악한 일을 하여 자기 목숨을 팔아 버린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눈 앞에서 쫓아내신 그 아모리 사람이 한 것을 본받아서, 우상을 숭배하는 매우 혐오스러운 일을 하였다.)

17.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Elijah the Tishbite: 
18. "Go down to meet Ahab king of Israel, who rules in Samaria. He is now in Naboth's vineyard, where he has gone to take possession of it. 
19. Say to him, `This is what the LORD says: Have you not murdered a man and seized his property?' Then say to him, `This is what the LORD says: In the place where dogs licked up Naboth's blood, dogs will lick up your blood -- yes, yours!'" 
20. Ahab said to Elijah, "So you have found me, my enemy!" "I have found you," he answered, "because you have sold yourself to do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21. `I am going to bring disaster on you. I will consume your descendants and cut off from Ahab every last male in Israel -- slave or free. 
22. I will make your house like that of Jeroboam son of Nebat and that of Baasha son of Ahijah, because you have provoked me to anger and have caused Israel to sin.' 
23. "And also concerning Jezebel the LORD says: `Dogs will devour Jezebel by the wall of Jezreel.' 
24. "Dogs will eat those belonging to Ahab who die in the city, and the birds of the air will feed on those who die in the country." 
25. (There was never a man like Ahab, who sold himself to do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urged on by Jezebel his wife. 
26. He behaved in the vilest manner by going after idols, like the Amorites the LORD drove out before Israel.) 

 


[회개하는 아합과 심판을 늦추시는 하나님]

27 아합은 이 말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하였으며, 누울 때에도 굵은 베 옷을 입은 채로 눕고, 일어나서 거닐 때에도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걸었다.
28 그 때에 주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손해졌기 때문에, 나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가문에 재앙을 내리겠다."

27. When Ahab heard these words, he tore his clothes, put on sackcloth and fasted. He lay in sackcloth and went around meekly. 
28.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Elijah the Tishbite: 
29. "Have you noticed how Ahab has humbled himself before me? Because he has humbled himself, I will not bring this disaster in his day, but I will bring it on his house in the days of his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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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Tim KIM 2012/05/15 08:04

    "자신의 가치를 팔아서 무엇을 사는가?"가 바로 나의 인생이 됩니다.

    마태복음25장을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에게 맡긴 각각의 달란트를 나중에 와서 결산하신다는 내용의, 잘알려진 본문입니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본문이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종에게 준 달란트가 각기 달랐다는 것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이는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시는 것이 불공평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장 적게 받은 종의 결과는 그 불공평해 보이는 불만에 더욱 부채질을 합니다. "나도 많이 받았다면 많은 결실을 할 수 있었을거야"라는 비교의식이 어디서부턴가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저의 눈에는 늘 주어지는 공평에 대한 시각이 있습니다.

    탐욕의 출발은 언제나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는 부족해"라는 단서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제 시각도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달란트 비유에서 2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가지는 돌아온 주인이 종을 칭찬하는 장면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든,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든 공히,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라고 하신 사실을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에게, 달란트의 차이는 크고 적음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는 각기 그의 분량에 맞는 것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나에게' 가장 적절하고 최고의 것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는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다섯이나 둘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적절한,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달란트입니다.

    깨달은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은 적든 크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키워나가는 나의 성실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생명을 잉태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작게 낳아 크게 키운다"는 말을 합니다. 아이를 크게 낳는다고 장래에 더 커지는 것도 아니고 작게 낳는다고 미래가 작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키워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키와 지혜가 자라셨습니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키워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경고를 받습니다. "자신을 팔아 악한 일을 하였다(20절)" 아합은 무능력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악함을 전파하는 것도 영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사탄도 영향력없고 무능력한 자를 애써 유혹하지는 않습니다. 아합은 영향력도, 주어진 달란트도 분명히 많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향력,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팔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전파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일에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신앙을 팔아먹는 일은 절대 하지마라"

    청년에게는 젊음이 달란트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말고, 젊음을 쓰라고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청년들이 젊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앞에 몸을 사리고, 어떻게 하면 실패를 덜할까? 어떻게 하면 고생을 덜할까? 어떻게하면 편히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젊음을 안락에 팔아버리는 삶을 삽니다. 돈은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돈에 쩔쩔매며 살아갑니다. 내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우리의 가치를 팔아서 돈과 바꾸고, 명예와 욕심과, 그리고 안락함을 사버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잊어버리고 자신을 팔아 개의 먹이가 되게 합니다. 내게 있는 영적 권위를 팔아 사단의 종노릇하고, 내게 주어진 재능들을 팔아 고작 자신의 말초신경을 만족케하는데에나 사용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영향력의 사람인데 그 영향력을 팔아 악에게 주고 있습니까? 내 안에 주신 사랑을 팔아서 분노와 미움에 퍼주고, 내 안에 주신 눈물을 팔아서 이기심, 나만 아는 자기중심에 퍼주어 버립니다. 내 안에 주신 헌신을 팔아서 착취와 욕심에 퍼줍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팔아 우리는 더 크고 아름다운 나라를 사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가치를 팔아 소망을 사야합니다. 나의 가치를 욕심이나 분노, 좌절이나 낙심에 팔아먹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가치를 세상의 유행과 풍조에 팔아먹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나의 가치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사용될 가치입니다. 나의 가치는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가치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나님께 관심받는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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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손성민 2012/05/15 09:52

    우리 하나님께서는, 내 하나님께서는
    겸.손.을. 너.무. 좋.아.하.신.다.
    겸손을 얼마나 좋아하시면...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면서
    그 지독히도 악한 왕 아합에게 재앙을 유보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겸손을 그렇게도 좋아하시는 걸까?...
    겸손하면 예수님이고
    겸손하면 순종이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시고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을 하신 분이시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겸손을, 순종을 좋아하시나보다.
    그러길래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 아픈 순종의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 아닌가!

    나는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우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믿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좋아했다.
    어린 아이가 자연을 좋아했다는 말이 조금 어색한가?
    하여간 조금은 조숙했었고,
    그래서 자연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으며
    그 자연에서 평안을 느낄 정도? ㅎㅎ

    근데 요즈음은 좀 변한 것 같다.
    작년 가을이, 우울해지면서 여름이 좋아졌고
    자연보다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외모?가 자연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여간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외모보다는 "마음"이다.
    빛나는 마음을 바라볼 때...
    수평선의 지는 해보다 더 아름답다.
    사람에게서 신을 느낀다.

    마음이 빛이 날 때는 언제일까...
    아마 겸손할 때가 아닌가한다.
    겸손하면 따라오는 순종의 때가 아닌가 한다.

    나는 딱히 내세울만한 게 없다.
    달란트로 치자면 겨우 한 달란트나 받았을까? ㅎㅎ
    그것마저도 땅속에 묻어둔 악한 종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언제나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그 말씀을, 이 부족한 나에게 주신다
    그 말씀은 바로바로 "겸손"이다.
    겸손하고 또 겸손해도 더 겸손해도...
    겸손은 부족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완전히 100% 죽어질 때까지
    아니 완전히 100% 죽어서 "겸손"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상하다...
    그 말씀이 나는 참 감사하고 기쁘다.

    오늘도 그 말씀, 주심에
    가슴이 부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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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ang 2012/05/15 17:08

    축구 경기가 잘 진행되려면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사각으로 그어진 라인 안에서 어떤 선수가 축구경기를 하다가 심한 반칙을 행했을 경우에는
    반칙을 행한 선수에게 심판은 경고로 엘로카드나 레드카드를 꺼내어 표시합니다.
    한 선수가 반칙을 행한 뒤에 레드카드를 받게 되면
    반칙을 행한 선수는 경기장에서 퇴장해야 합니다.
    그 때 반칙한 선수는 “내가 왜 그렇게 반칙을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그런 뒤늦은 후회는 자신에게서만 여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팀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경기장에 남아 있은 10명의 선수들은 상대팀 11명의 선수들을 상대로 더 힘든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나봇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은 엘리야을 통해서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모두 죽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자 아합은 자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합이 진정한 회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아합의 자손에게 내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이 뒤늦게 후회한들 아합 가문에 내릴 재앙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경고를 듣거나 받으면 그 때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합니다.
    경고를 받기 전에 먼저 잘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일을 그릇되게 해 놓고선 그 때서야 후회하고 반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으로부터 2번씩이나 은혜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잘나서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경고를 받은 뒤 뒤늦게 후회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뒤늦게 구한 용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아 아합이 용서를 받았지만
    그 여파는 자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린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기 전에,
    뒤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삶속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신실하게 주의 뜻을 좇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뒤늦은 후회와 회개는 여파를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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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cjc Ian 2012/05/16 11:43

    -오늘의 찬양, 주 나의 하나님 (The Lord My God)-
    주 나의 하나님 나 주를 찬양하리라
    주 나의 하나님 영원히 찬양하리라
    한 걸음 한 걸음 주 곁으로 나아가오니
    주님의 그 손으로 나를 잡아주소서

    아침에 주를 찾으며 주의 길을 배우리라
    저녁에도 주를 찾으며 주의 길을 배우리라
    주의 길을 배우리라 주의 길을 배우리라
    주 나를 인도할 때 내 평생 주님을 따라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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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진형 2012/05/19 12:22

    하나님께서는 정말 끝까지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구나...
    하지만 죄의 값은 반드시 치뤄지는 구나...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는 두가지 였다.
    또한 우리는 죄의 값을 감당할 수 없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에 대한 사랑하심을 확증하셨다..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나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말로만 고백하고 찬양하는.. 내 마음을 주님은 알고 계실텐데..
    부족함이 더욱 커보이는 스스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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