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5 [G.T 묵상]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2:1-11)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 2:1-11)
[판단하는 이들에게 임하는 심판]
1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2 "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4 더구나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사람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관용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기까지 한다니, 될 말입니까?
5 그런 사람은 완고한 마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를 터뜨려 의로운 심판을 하실 그 날을 앞에 두고,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1.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ment do the same things.
2. Now we know that God's judgment against those who do such things is based on truth.
3. So when you, a mere man, pass judgment on them and yet do the same things, do you think you will escape God's judgment?
4.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tole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leads you toward repentance?
5. But because of your stubbornness and your unrepenta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against yourself for the day of God's wrath, when his righteous judgment will be revealed.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6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7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8 이기심에 얽매여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을 내리실 것입니다.
9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요,
10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6. God "will give to each person according to what he has done."
7. To those who by persistence in doing good seek glory, honor and immortality, he will give eternal life.
8. But for those who are self-seeking and who reject the truth and follow evil, there will be wrath and anger.
9. There will be trouble and distress for every human being who does evil: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0. but glory, honor and peace for everyone who does good: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1. For God does not show favori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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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롬2:1~11)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솜므전투는 세계 전쟁사에 가장 어쩌구니 없고 어리석은 전투로도 유명하다. 영국군과 프랑스군 연합군이 송므강근처에서 독일군에게 무려 150만발의 포탄을 퍼부으면서 시작된 이 전투는 결과적으로는 연합군의 참패로 끝났다. 연합군이 구사한 전략은 일명 ‘탄막포격’으로, 적의 진지를 빗자루로 쓸 듯이 포탄을 퍼부어 무력화시킨 후 지상군이 진격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포탄의 엄호를 받으며 전진하는 전술이었다. 이 전략은 정교한 관측기술과 포탄의 정확성, 그리고 서로의 교신을 위한 통신 기술이 집약된 고도의 전술전략이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참패하고 말았다. 관측기술이나 포탄의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교신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고난이도의 기술들은 제대로 발휘되었다. 문제는, 그 수많은 포탄을 맞으면 적의 진지가 괴멸할 것이라는 예측 자체가 빗나가 버린 것이다. 독일군의 진지는 멀쩡했다. 그들의 진지는 지하 20m에 위치한 지하벙커였기 때문이다. 이 전투를 많은 이들이 ‘탁상공론의 비극’이라 부른다.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다만 전투현장이 탁상의 예측과 달랐을 뿐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게으른 철학자는 세상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석만 한다.”고. 세상을 해석만 할 뿐,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철학은 이미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관념에만 머물러 삶과 맞닿지 않는다면 그 철학은 생명을 잃은 것이다. 솜므전투에서 전략가들의 탁상의 생각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들의 전투기술은 훌륭했고, 빛났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맞는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전투현장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
우리의 판단과 비판은 늘 그렇다. 비판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판단의 늘 빗나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판단과 비판 기술은 훌륭하고 또 대부분 맞다. 판단의 명수들은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사실을 꿰뚫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우리의 비판적인 판단들은 언제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모든 상황을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그 판단들이 삶의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아무리 옳은 소리여도 판단은 판단일 뿐이고 비판은 비판일 뿐이다. 판단과 비판이 빛을 발하려면 현장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론이나 상황이 아닌 생명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절차나 전통, 권위나 마땅이 있음직한 논리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오직 생명에 관심하신다. 그래서 모든 권세 위에 일하시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십자가를 계획하신다. 하나님의 생명 사랑은 모든 이론을 파하신다. 그 생명이 하나님의 영적전투의 현장이기 때문이시다. 그 현장을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까지도 파신다. 그 현장을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도 파신다. 비판이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판단이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비판과 판단이 바로 그 현장을 떠나 탁상공론에 머무는 것이 잘못이다. 가룟유다가 주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차라리 불쌍한 이들을 도왔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한 언급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아마도 누구나도 그렇게 생각함직하고 또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판단이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시는 현장을 떠나 있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억울할지라도 말이다.
이론을 중시할수록 우리는 외형과 형식에 빠진다. 우리의 신앙이 탁상공론에 머물수록 우리는 시험에 빠진다. 우리의 생각과 말이 현장을 벗어날수록 우리는 자신의 판단의 세계에 빠진다.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고...
10절: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여기서 선이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따라 행하는 사람을 말함이라.
나는 선을 행하는 사람일까?...
왜 자신이 없는 걸까?
무엇이 걸리는 걸까?
하기야 어느 누가 자신이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겠는가!
선하신 분은 그분 한 분 밖에 없는데,
거꾸로 생각해보자.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는 사람은 선을 행하는 사람(?)
마음이 빛이 나고 귀하며 평안이 있는 사람은, 선을 행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빛나고 귀하게 평안함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는데 왜 그리 가슴이 찡한 지...
정말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로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구나!
그 복은 아픔과 죽음...등을 뛰어넘는 것이구나!
마음이 빛이 나고 귀하며 평안한 것처럼 완전한 복이 어디 있겠는가!
관건은 아픔과 죽음... 등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이다
음...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정말 뛰어넘을 수 없다.
내 안에 그분을 모시지 않고는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을 뿐더러
나는 결코 선을 행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실 때만,
나는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실 때만,
나는 빛나고 귀하며 평안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빛나고 귀하지는 않지만
평안한 것 같다?!
사람들은 자기를 잘 포장합니다.
못난 사람인데 잘난 사람처럼 포장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일에 익숙한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쓰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잘못이나, 못난 부분이 발각 될 까봐
오히려 더 포장하고, 오히려 더 다른 사람을 강하게 비판하고 힐난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을 해놓고선 잘 했다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려고 늘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의 성품입니다.
근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 눈을 감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냥 기다려 주시는 것 같아 보여서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고, 여전히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우리의 죄가 우리 스스로에게 올무가 되고,
우리의 판단이 우리에게 족쇄가 되어서 더 이상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한다는 것을 스스로 모를 수 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된 부분을 포장하는 일을 스스로 모를 수 는 없는 법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선한 양심을 가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남을 판단하고, 남을 정죄하는 일을 계속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쌓이고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쁜 것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법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가 결정되면 좋을터인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이 결정합니다.
근데 그 결정하심이 우리에게는 가혹한 것이 될 수 있고,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가혹해 하기 위해서 결정되어지거나,
억압하고 고통을 주려고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칙(rule)에 의해서 결정(decision)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그 결정은 우리에게 언제나 은혜입니다.
우리가 짦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는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그 시간이 은혜의 시간이요,
새로운 세상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결정권을 가진 하나님은 언제나 실수가 없으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를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을 우리 중심에 두어 하나님이 우리의 법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진노를 쌓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