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0 [G.T 묵상]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가복음 10:46-52)
2012/02/20 05:30
Posted by bcjc Posted in " BCJCian의묵상나누기 "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가복음 10 : 46-52)
[바디매오의 부르짖음]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6. Then they came to Jericho. As Jesus and his disciples, together with a large crowd, were leaving the city, a blind man, Bartimaeus (that is, the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47.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shout,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48. Many rebuked him and told him to be quiet, but he shouted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바디매오의 믿음의 행동]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부르며 말하기를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하였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49. Jesus stopped and said, "Call him." So they called to the blind man, "Cheer up! On your feet! He's calling you."
50. Throwing his cloak aside, he jumped to his feet and came to Jesus.
[소원이 응답되고 예수를 따르는 바디매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51.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Jesus asked him. The blind man said, "Rabbi, I want to see."
52. "Go," said Jesus, "your faith has healed you."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followed Jesus along the road.
'BCJCian의묵상나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2-02-22 [G.T 묵상] 이스라엘을 저주하신 예수님(마가복음 11:11-18) (8) | 2012/02/22 |
|---|---|
| 2012-02-21 [G.T 묵상]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마가복음11:1-10) (7) | 2012/02/21 |
| 2012-02-20 [G.T 묵상]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가복음 10:46-52) (9) | 2012/02/20 |
| 2012-02-18 [G.T 묵상] 하나님의 영광 (마가복음 10:32-45) (6) | 2012/02/18 |
| 2012-02-17 [G.T 묵상] 가난의 가치 (마가복음 10:22-31) (8) | 2012/02/17 |
| 2012-02-16 [G.T 묵상] 천국을 얻을 자 (마가복음 10:13-21) (8) | 2012/02/16 |

Comments
-오늘의 찬양, 나는 자유해-
눈먼자 보게해
갇힌자 노래해
죽은자 일어나 모든맘 찬양해
어둠이 걷히고 내영혼 외쳐 자유해
나는 자유해 나는 춤추네
주님만 위해 살리 자유해 자유해
지난 한주간 몸살에 감기에 아팠다. 아파보니 한가지 깨닫게 되었다. 아프면 빨리 낫고 싶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게 된다. 안아프고 싶다가 제일 먼저다.
아파서 힘들었지만 삶을 단순히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수많은 문제들 중 이처럼 가장 내게 필요한걸 물어오실 때, 답할 수 있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고 사는 삶, 복잡하지 않게 제일 먼저 해야할 것들에 대해 순서대로 해 나아가는 한 주를 맞이하자!
시4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진짜 내가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좌절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갑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방해해도, 누군가가 태클을 걸어도 나에게 갈망이 있다면 그것은 멈추지 않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는 "너에게 갈망이 있느냐?"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갈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51절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주님은 바디매오에게 물으셨다. 주님은 바디매오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알고 계셨다. 또한 바디매오를 본 사람들도 바디매오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치유할 수 없었다. 바디매오는 주님께 "내 눈을 고쳐달라"라고 조르지 않았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였다. 주님도 "너의 눈이 고쳐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주님은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다. 바디매오가 '내 눈을 고쳐주소서' 라고 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주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라고 했다. 긍휼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눈이 주님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내 것, 내 상황, 내 처지를 말하기 전에 그는 주님께 긍휼을 구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닌가! 오늘도 미숙하지만 긍휼을 구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한다.
다시 보게 되기를 원했던 바디매오가 다시 볼 수 있게 된 후 예수가 가는 길을 따라 나섰다.
영문에는 '다시'라는 말이 없지만 새번역에는 '다시'라는 말이 있다.
새번역을 기준으로 말씀을 묵상해 보았을 때 바디매오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해 나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가 시력을 잃고 거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속엔 예수님께 고침받는 일이 과연 있었을까?
예수님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긍휼히 여겨 달라는 처절한 간구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누가 봐도 바닥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내려갈 때까지 내려간 그 삶의 상황에서...
그의 곁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시기만 했을 뿐이데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힘껏 소리쳐 예수님을 불렀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그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신 것 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셨다.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구원 받은 것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행복했을 텐데 그는 그 기쁨을 뒤로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섰다.
나의 필요가 채워졌다고 행복과 기쁨에 취해있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섰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섰다......
오늘 나는 어떠한가..
수많은 필요를 내가 구하기도 전에 채워주고 계시는 주님을 따라 길을 나섰나?
주님 가시는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나?
아니 감사는 제대로 하고 있나?
바디매오의 고백이 필요한 나이다.
이 거지같은 마음, 끊임없이 죄에 종노릇하고 있는 불쌍한 나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죄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말씀으로 자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구해야 할 때이다. ㅠㅠ 주님.....
맹인.. 어떤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는 흙탕물과 같다. 한참을 놔두면 흙은 가라앉고 위에는 깨끗해보이는 물만 보인다. 휘저으면 도로 흙탕물이 된다' 어제 '순수하신것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남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언제부턴가 저 밑바닥에 흙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깨끗한 물이 실제 자신인양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하신다. 어느덧 흙탕물인 나의 본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 내가 진짜 맹인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수면위로 떠오르는 나의 죄성을 실제적으로 맞닥뜨리며 놀랄 때가 있다. 그러하기에, 오늘 바디매오의 외침이 나에게 슬픈 울림으로 다가온다. 매번 자신의 모습에 수없이 좌절하다 어느덧 체념하고 무뎌졌을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우연히 예수님의 지나가심을 만나게된다. 예수시란 말을 듣자마자 간절하게 소리친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의 슬픔을 들으셨다. 맹인은 '너를 부르신다'는 그 한마디에 겉옷도 버릴만큼 기뻐 뛰어간다. 고침받을 것을 확신하고 나아갔을까... 내 생각으로는, 그것보단.. 그 많은 무리중에서 어떻게.. 자신같은 사람을 예수님께서 보셨다는.. 감격에 겨워서 그 중요한 옷도 안중에 없이 정신나간 채 나아갔을 것같다.
더하여 예수님의 '무엇을 하여 주길 원하느냐?'의 완전한 소망의 기쁨을 코앞에 대면하게된다. 고침받는데서 나아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까지 된 그가 너무나도 정말 부럽다.
'불러주심'그것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운데, 오늘 주님이 나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신다면.. 생각만으로도 가슴벅찬 질문이다. 그 소망을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쁜하루가 될꺼 같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지나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불러 간구할 수있었던것은 이미 그가 예수님에대해 들었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 듣기만 들었을뿐 믿지 아니하고 그에게 희망이과 소망이있다는 것을 알지 않았다면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도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날 도우소서 날 고쳐주소서 잠시 날 보소서 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하신 부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외쳤기에 예수님이( 불쌍히, 가엽게 여기주시고 그분의 관심과 그의 손길을 간절히 원했기에 ) 돌아서서 바디매오에게 이리오라고 불러주셨을 것이다 바디매오와 예수님의 사랑이 통하는 순간이다.. 나를 돌아본다 오늘 나는 예수님께 소망을두었는가? 정말로 그분으로하여금 이땅에 회복이 이루어짐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예수님보다
중요한건 없다.. 이 사실에 인정하
고 두손을든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관점이 그에게 머물지는 않았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